양동마을은 유가(儒家)의 법도와 선비 기풍으로 500 여년을 다져 오면서 많은 문화재를 간직한 보기 드문 반촌(班村)이므로 전통문화와 한국적 정취가 가장 완벽하게 살아 있다.
이 마을의 문화재 수는 국보1점, 보물4점, 중요민속자료12점, 유형문화재2점, 기념물1점, 민속자료1점, 문화재자료1점, 향토문화재2점으로 도합24점이나 되고, 마을 전체가 1984년 12월 20일 중요민속자료 189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 옛 명문 대가의 영광스러운 자취와 선조들의 삶이 배어 있는 200년 이상 된 고가54호가 보존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 외거하인들이 살던 가립집이라 부르던 초가집이 3∼5채씩 반드시 딸려 있어 주거공간에도 신분계층의 질서가 있었으나 주변의 초가는 많이 없어졌으며, 현재 초가집에 살고있는 사람들과는 무관한 역사속의 사실이 되었다.
사랑채는 대개 정자(亭子)형태로 지었으며 위패나 영정을 모신 사당이 있는 종가와 파주손집이 다섯집이고 별도로 지어진 영당1동이 있다.
조선중기 이후의 다양하고 특색있는 우리나라의 전통가옥 구조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고건축의 전시장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 곳이다.
말 그대로 양동민속마을 자체가 살아있는 유교문화의 유산 자체인것이다.
무첨당(無添堂) 보물 제411호
회재 이언적 선생의 부친인 이번(李蕃)공이 살던 집으로 1460년경에 지은 여강 이씨(驪江 李氏)의 종가집인데, 별당의 기능을 중요시한 간결하고 세련된 솜씨의 주택이다.
무첨당(無添堂)은 이언적 선생의 다섯 손자 중 맏손자인 이의윤(李宜潤)공의 호이며 조상에게 욕됨이 없게 한다는 뜻이다. 오른쪽 벽에는 대원군이 집권 전에 이곳을 방문해 썼다는 죽필글씨인 좌해금서(左海琴書)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영남(左海)의 풍류(琴)와 학문(書)'이라는 뜻이다.
관가정(觀稼亭, 보물 442호)
청백리로서 조선 성종(1469∼1494)∼중종(1506∼1544)때 명신 우재 손중돈(憂齋 孫仲暾 1463∼1529)선생이 손소공으로부터 분가하여 살던 곳이다. 격식을 갗추어 간결하게 지은 우수한 주택건축이며 한 눈에 들어오는 형산강과 경주를 품어 안은 경관이 일품이다. 관가정(觀稼亭)이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이 자손들이 커가는 모습을 본다는 뜻이다.
특히 양반집이 아래쪽에 배치된 하인들의 거처인 가립집(초가) 4∼5채가 잘 보존되고 있는 모습을 볼수 있는데, 지금은 손씨 후손들이 살고 있다.
심수정(心水亭) 중요민속자료 제81호
형을 위해 벼슬을 마다하고 노모 봉양에 정성을 다한 회재 이언적 선생의 아우 농재(聾齋) 이언괄(李彦括)공을 추모하여 1560년경에 건립한 정자이며, 큰 고목들이 건물을 감싸 안고 있다.
서백당(書百當) 중요민속자료 제23호
안골 중심지에 자리잡은 규모와 격식을 갖춘 대가옥으로 이 마을의 입향조라 불리는 양민공 손소(襄敏公 孫昭)공이 성종 15년(1454년)에 지은 월성 손씨(月城 孫氏)의 종가집이다. 서백당(書百當) 또는 송첨(松詹)이라 부르며, 서백당(書百當)은 하루에 참을 인(認)자를 백 번 쓴다는 뜻이며 근래에 와서 굳어진 당호(堂號)이다.
집터를 잡아준 풍수가 설창산(雪蒼山)의 혈맥이 응집된 이 터에서 세 명의 위대한 인물이 태어나리라 예언했다 하는데, 손소 공의 둘째 아들로서 명신이자 청백리인 손중돈 선생과 그의 생질이 되는 이언적 선생이 어머니가 친정에 와서 해산함으로써 이곳에서 태어났고, 한 분은 아직 미탄생이라 한다. 30년 전만해도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며, 사랑채 마당에 서면 견광이 빼어나고 평화와 행복의 요람처럼 느껴진다.
경산서당(景山書堂)
이 서당은 회재 선생이 맏손자 무첨당 이의윤(無忝當 李宜潤)공을 봉양하면서 학문을 가르치던 곳이다. 1835년경에 이웃 안계리에 건립되어 있던 것을 댐 건설로 1970년 이곳으로 옮겼다. 이 마을엔 서당이 3개나 되는데 이씨 문중의 강학당과 경산서당 그리고 손씨 문중의 안락정(安樂亭)이 그 곳이다.
두곡영당(杜谷影堂)
영당은 영정을 모시고 제사하는 곳인데, 이 영당은 수졸당(守拙堂) 이의잠(李宜潛)공의 영정(影幀)을 모신 곳으로서 1636년경의 건축물이다. 이곳에 모신 영정은 수졸당이 하양(河陽) 현감 재직시 선정을 베푼 보답으로 현민들이 그려서 가져온 것을 영당을 지어 모시게 된 것이다. 매년 중양절(음력 9월 9일)에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손소 영정(孫昭 影幀) 보물 제1216호
양동민속마을의 입향조라 불리고 이시애의 난(1467년)때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이 된 양민공(襄敏公) 손소의 초상화이다. 이 영정은 몇 점뿐인 조선초기의 공신상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작품으로서 50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공신도상(功臣圖上)과 회화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자료는 서백당 안에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