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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 및 유래

    전통 고급과자 양동약과

    양동약과

    약과(藥果)는 밀가루에 꿀을 섞어 반죽한 것을 기름에 튀긴 유밀과(油蜜果)의 하나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사치스러운 고급의 과자이다.

    이러한 약과는 정월에 많이 만들어 먹는데, 통과의례나 명절, 잔치, 제향(祭享)때의 필수음식이었다. 약과는 이미 고려시대 때 널리 유행하여 왕족과 귀족, 그리고 사원과 민가에서 널리 즐겨 먹었는데, 특히 "왕족과 반가, 사원에서 유밀과를 만드느라 곡물과 꿀, 기름 등을 많이 허실함으로써 물가가 올라 민생을 어렵게 한다."고 하여, 고려 명종 22년(1192)과 공민왕 2년(1353)에는 유밀과의 제조금지령을 내렸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약과가 대표적인 기호식품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약과는 본디 '약(藥)이 되는 과자(果子)'라는 뜻인데,《오주연문장전산고》와 1613년 《지봉유설(芝峯類說)》에 " 그 재료인 밀은 춘하추동을 거쳐서 익기 때문에 한달가운데 네 때의 기운을 받아 널리 정(精)이 되고, 꿀은 백약(百藥)으로 가장 좋으며, 기름은 살충(殺蟲) 한다. 고 약과 재료의 특징을 잘 설명하고 있다.

    1948년의 《조선상식(朝鮮常識)》에는 "조선에서 만드는 과자 가운데 가장 상품이며, 또 온 정성을 들여 만드는 점에서 세계에 그 짝이 없을 만큼 특색있는 과자다."고 하면서, "속칭 과줄이라 하고 한자로 조과(造果),혹은 약과(藥果)라고 쓴다."고 하였다.

    약과의 모양은 처음에 대추.밤.배.감.물고기.짐승의 모양이었다가 점차 변하여 조선시대에는 원형이 되었고, 제사 때 사용하는 약과의 경우 제사상에 쌓아 올리기 불편하여 다시 방형(方形)이 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 예로 《성호사설》에서 "약과는 여러 가지 과실 모양이나 새의 모양으로 만들었던 것이나, 훗일에 고이는 풍습이 생겨나면서 넓적하게 자르게 되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약과는 기름에 지질 때 기름이 속까지 배어들도록 천천히 지져 집청에 넣게 되므로, 단면이 여러 켜를 이룬 듯 하고, 그 사이에 기름과 꿀이 속속들이 배어 있어 고소한 맛과 단맛이 많은 음식이다.